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2002년 가계 신용카드 대출 부실 사태 (문단 편집) == 사태의 원인 == 여기서 발생한 문제는 '''카드사들이 신용카드를 발급받기에 부적절한 사람들에게도 손쉽게 발급'''해 줬다는 것이었다. 그 이유는 카드사들의 경쟁 과잉 때문이었다. 특히 당시 [[LG그룹]]은 제조업을 비롯한 대부분의 계열사들이 [[삼성그룹]][* [[LG생활건강]]의 경우 삼성그룹은 유사한 사업을 하는 계열사가 없고 현재 롯데로 매각된 삼성의 화학 계열사들의 경우 건축자재 사업을 하지 않았으므로 논외. 다만 화장품 및 생활용품의 경우 같은 [[범삼성가]]인 [[CJ]]가 과거에 유사한 사업을 한 전적이 있다.]에 밀리는 상황에 카드사만은 삼성을 앞서 1위를 차지하자 내실은 신경쓰지 않고 더욱 공격적인 마케팅에만 몰두하게 되었다. [[삼성카드]]는 그래도 카드 대란 6개월 전쯤에 상황을 파악하고 내실화를 시작했으나 그때도 [[LG카드]]는 정신을 못 차리고 더욱 폭주하고 말았다.[* 결국 이 때문에 카드 대란 이후 LG카드는 [[신한카드]]에 인수당하고 말았으며 삼성카드는 한국 유일의 카드사 상장기업으로 성장했다.] 실제로 2000년대 초반에는 번화가에서 가판대를 설치한 다음에 사은품[* 카메라부터 핸드폰, [[PDA]]까지 당시 고가 제품들을 사은품으로 줬다.]이나 기타 혜택으로 카드 신청을 권유하는 풍경을 흔히 볼 수 있었고[* 오늘날 대형마트 고객센터 앞에서 카드모집인이 가판대를 차리고 제휴카드를 권유하는 풍경을 많이 볼 수 있는데 이런 가판대가 전국 길거리에 깔려있었다고 보면 된다.] 연회비를 대납해 주는 중개인들도 많았었다. 현재로선 상상하기 힘들지만 발급 심사[* 신용카드는 소득, 재산, 평잔 등 요건이 되는 사람에게 발급하며 가처분소득을 기준으로 신판 및 대출한도를 부여하는 것이 원칙이다.]는 요식행위에 불과했고 정규 수입이 없는 '''대학생'''도 손쉽게 카드를 만들 수 있었다. 심지어 [[미성년자]]이므로 법정대리인 동의 없이는 계약 자체가 불가능한 '''[[고등학생]]'''까지 서명만 하면 발급해 주는 정도였다. 미성년자 신용카드 발급은 당시에도 엄연히 불법이었고 [[http://imnews.imbc.com/20dbnews/history/2003/1998951_19578.html|결국 철퇴를 맞았다.]] 당시에는 TV 광고에 대한 규제도 별로 없었던 덕에[* 당시의 방송 수위는 지금의 케이블도 놀라 자빠질 만큼 높았다. 지상파 방송에 [[산와머니]] 같은 [[사채]] 광고가 떠도 아무도 놀라지 않던 시절이었다.] 카드사들의 소비 조장 광고도 열심이었다. 당장 나이 좀 있는 성인들 중에서 '''"[[비씨카드#s-8|여러분, 모두 부~자 되세요]]"'''나 '''"[[현대카드#s-5|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같은 걸 못 들어 본 사람은 없을 것. [[이영애]], [[배용준]], [[김정은(배우)|김정은]], [[정우성]], [[고소영]], [[정준호]], [[장진영(배우)|장진영]] 등 당대의 본좌급 배우를 모델로 내세우는 것은 기본이었다. 마지막에는 '''[[LG카드#s-4|아무 말 안 하고 광고 모델이 백화점 들어갔다가 상품을 한보따리 챙겨 나오는 광고]]'''까지 나올 정도였다. 무분별한 경쟁과 자극적인 광고는 신용카드를 사용하는 사람은 인생을 멋지게 사는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심어주었고 아직 금융에 대한 이해가 높지 않았던 사람들은 가벼운 마음으로 신용카드를 이용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과정에 힘입어 1990년에는 1,000만 장에 불과했던 신용카드 수가 2002년에는 무려 1억 장을 넘겼다. 이는 경제활동인구 1명 당 무려 4.6장의 카드를 보유하고 있었던 셈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